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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방콕에 정착하고 사회생활을 시작한 이후 대우재단에서 운영하는 GYBM 청년사업가 프로그램을 통해 태국 취업시장에 진출한 학생들, 취준생들과 잦은 만남이 있었다. 내가 의도해서 만났다기 보다는, 직장 생활을 하다가 사회생활을 하다가 우연히 만나게 된 사람들이었다. 이런 프로그램을 통해서 취업을 할 수 있다는 것이 참 신기했고 한편으로는 큰 용기를 갖고 태국에 온 이들에게 큰 박수를 쳐주고 싶었다. 그리고 그 마음은 지금도 변함이 없다.

 

대우재단에서 운영중인 청년사업가 프로그램을 보니 대개 베트남에 집중하고 있는 것 같다. 연혁을 보아하니 베트남과 비교해서 태국을 대상으로 교육시킨 연수생 수도 별로 많지 않았다. 100명 남짓 되는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방콕에서 어딜가나 이들과 만나고 교류할 수 있었던 것을 생각해보면 100명이라는 숫자가 결코 적은 숫자가 아님을 느낀다. 

 

나는 태국어를 전공한 사람으로서 항상 이 언어를 전공한 것에 대한 자부심과 열정을 가지고 있다. 19살의 나는 이 낯선 언어에서 뿜어져 나오는 깊은 바다와 신비로움에 취해 겁도 없이 대학에서 전공을 결심했다. 참으로 어리석고 철 없는 결정이었다. 이 언어를 14년동안 공부하고 참으로 많은 시간을 공들였지만 또한 참으로 많은 시간을 후회 속에서 보냈음을 고백한다.

 

지금도 나는 매일 퇴근을 하면 이 낯선 언어를 낯설지 않은 언어로 바꾸기 위해 매 시간을 공부하고 또 공부한다. 매일 매일을 이러다보면 마치 신이 나에게 결코 허락하지 않은 것을 끊임없이 탐내며 열리지 않는 상자를 억지로 여는 내가 어리석은 사람인 것만 같은 기분이 든다. 그런데 어쩌랴. 내가 선택한 길인 것을..

 

내가 두번째 직장을 탐색하던 시절, 당시 나는 첫 직장에서 상사와 약간의 트러블이 있었다. 그것은 나의 Supervisor인 상사가 나에게 내리는 엄정한 평가였고 올바른 피드백이었다. 그러나 당시 나의 그릇이 너무 작은 탓에 상사의 그런 피드백이 참으로 서운하고 속상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갈급함에 못이겨 다른 회사를 알아보던 때가 있었다. 상사가 엄하기도 했지만 참으로 따뜻했던 분이었지만 결과적으로 내가 그 회사에서 배울 것이 없음을 간파하고 적시에 나올 수 있었던 것은 참으로 복된 일이라 할 수 있다. 

 

두번째 직장 후보지는 대기업이었다. 지금 근무하고 있는 회사의 계열사들이었는데 그당시 나는 석사시험 광탈이후 내 인생에서 태국어를 가장 잘한다고 확신에 넘치는 시기였다. 그래서 어디에 면접을 가든 노스크립트 노사전 통번역 기계와 같은 실력을 뽐내고 있었다. 그때는 분명히 그랬다. 왜냐하면 진짜 밥먹고 화장실 가는 시간만 빼고 태국어를 달고 살았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대기업 임원면접까지 3단계 면접을 통과한 이후 나는 마음 속에 거대한 기대를 품고 있었는데 신이 나에게 허락한 시간표에 남은 과목이 있었는지 결코 이직을 허락치 않았다. 탈락의 고배를 마시고야만 것이다.

 

나는 탈락 이후 내 태국어 실력이 무척 미진하여 그런줄 알고 정말 속상했었다. 그야말로 산넘어 산이 아닐 수가 없었다. 얼마나 더 잘해야 회사 프리패스가 나오는 것인가. 참으로 고독한 하루를 보내야 했다. 시간이 많이 지나고 나중에 그 회사에 재직중이던 선배를 통해 알아본 결과 신입사원을 세명이나 뽑았다 했다.

 

당시 나는 경력이 미천하나 @년정도는 있었던 상태였고 태국어는 정말로 섬섬옥수가 빛나는 시절이었는데 어째서 나는 뽑히지 않았는가 너무 억울해서 선배에게 물어보았다. 이유인즉슨 회사에서 GYBM 프로그램으로 채용해야하는 인원이 있어 우선 선발했다는 것이었다. 나는 너무 충격을 받아서 그날 점심부터 소주를 먹고 싶었다. 내 실력 때문이 아니었다. 오히려 법인장님 외 실무자 선에서는 나를 정확히 채용하고 싶다는 의사가 있었다는 것이었다. 조직에서 법인장님 결재가 안나서 빠꾸먹는 일은 비일비재한 일이니 지금에와서 한탄해봐야 무엇하랴-. 

 

그러고보면 GYBM은 정말로 훌륭한 프로그램 아닌가. 채용연계를 100% 보장해준다는 설명이 결코 틀리지 않다는 것이다. 현지언어를 6개월에서 10개월 트레이닝 시키고 취업을 알선해준다는게 사실 가능한 일인가?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런데 그것이 현실로 일어나게끔 지원해준다는 것이다. 13년차 태국어 학-석사라는 가장 강력한 경쟁자를 패스해서 조직에 당신의 이력서를 쥐어준다는 것이다. 당시 나의 마음은 너무나 작은 김치보시기 수준이었으므로 이러한 일에 대해 참으로 대인배다운 여유를 가질 수가 없었다. 

 

당시 면접에서 대우 청년사업가 프로그램 친구들에게 취업 기회를 내어주고 나는 원래있던 조직에서 2년을 더 버티고 동회사 다른 계열사 대리급으로 이직을 했다. 이직 이후 나는 스트레스가 너무 심해 나 이외에는 모든 일들을 내려놓고 오직 업무에만 집중하는 시간을 보내야했다. 태국어 13년차가 초라해질만큼 언어에 너무 큰 스트레스를 받는 시간이었고 대기업에 어울리는 프로페셔널한 분위기에 나를 구겨넣느라 우울함이 스믈스믈 올라오는 퇴근길에서도 정신 똑바로 차리고 앞으로 걸어야했다. 

 

그리고 작년 말쯤 선배들과 송년회를 하면서 물어보니 그 대우 친구들이 결국 퇴사하고 한국으로 모두 돌아갔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결국 모두 3년도 못버티고 돌아간 것이다. 그럴 수 밖에 없다. 13년한 나도 이렇게 힘들고 지치는데 너희들은 오죽하랴. 그 아픔을 나보다 더 깊게 공감해줄 수 있는 사람은 없으리라. 그런데 삶의 무게를 견디는 것은 실력이 아니라 멘탈인데 멘탈이 약한 것은 변호해줄 엄두가 안난다.

 

나는 방콕의 밤거리에서, 술자리에서 그 친구들을 참 많이 만났다. 그들이 가진 열정과 가치관 언어에 대한 애정 모두 느끼고 관찰했다. 나는 전공자가 가진 언어에대한 애정과 자부심을 그들에게 강요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너무 허탈했다. 모두가 그렇다는 것은 아니지만 마음에 불꽃이 없는 사람들에게 내가 뒤쳤었다는 사실이 용납되지 않았다. 지금은 돌아간 이들일 것이다. 태국어에 대한 애정은 둘째치고 태국인들과 한국인들을 나누는 이분법적인 사고에 행여나 오염될까 게워내고 싶은 역정이 들기도 했다. 회사에 태국인과 한국인이 어디있는가? 정신차리라. 회사에서는 오직 직무와 경력만 있을 뿐이다. 국적이 어딨으며, 경력 1년도 안되는 철딱서니들의 말을 귀기울여 들어줄 시니어가 어디있는가? 풋내나는 하소연을 듣는 것도 지겨웠다. 

 

작년인가 부터는 GYBM 태국연수생을 뽑지 않는다고 한다. 나는 이 프로그램이 정말 취업을 간절히 원하는 사람들에게 가장 효과적인 등용문이라고 생각한다. 다만 GYBM이 원하는 회사를 가려서 추천해주지는 않는다. 아무 중소기업이나 들고와서 일단가서 일하라고 종용하는 사실도 내 두눈으로 목도했다. 이 친구들이 나에게 와서 하소연하고 이야기할 때 참 마음이 아프고 딱했다. 왜냐하면 나와 같은 아픔을 나누고 있는 세대들이기 때문이었다. 가장 충격적인 것은 일정기간을 버티지 못하고 귀국할 경우 교육료를 rebate 해야한다는 사실이었다. 사실 이 부분은 검색하면 수강생들의 후기를 보면 금방 알 수 있다. 

 

그러나 이 철딱서니 없는 친구들이 요구하는 바도 어마어마 했으므로 동정심이 들지는 않는다. 태국어도 안되고 영어도 안되며 태국인에 대한 이해도도 전혀 없는 철딱서니 없는 MZ에게 연봉 3만불을 주는 회사가 어디있냐. 내가 태국어로 논술이 자유롭게 될 때 연봉도 3만불이 안되었고 3개국어가 완벽한 교민자녀들도 시작은 6만바트 7만바트 시작이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너희를 주재원으로 보내줄 회사가 어디있으며 너희가 원하는 복지가 능력에 비해 가당키냐 한 것이냐. 그런 생각을 하면서도 이들이 원하는 것이 사실은 내가 원하던 것임을 가슴 깊이 공감했다. 누구나 첫 경력에서부터 초라하고 남루한 삶을 영위하고 싶진 않을 것이다. 그러나 시간의 주가 낫을 휘두르면 모든 것이 갈무리되는 현실에서는 철 없는 하소연을 거두는 저 토성신의 엄정함이 있을 뿐이다. 

 

태양이 작열하는 이 남쪽 나라에 오고가는 젊은 사람들이 참으로 많다. 이 지긋지긋한 언어를 또 공부하러 가야한다. 6개월 배운 이들도 회사는 참 잘 다닌다. 그런데 어째서 나는 계속해서 욕망하는 것일까? 정금같이 나오리라 하는 격언이 나를 채찍질한다. 전공자로서 품위를 잃지 않고 언제나 최고의 실력을 보장하기 위해서 조직에 불필요한 사람이 되지 않기 위해서, 태국인과 한국인을 나누는 어리석음을 범하지 않기 위해서 아무도 응원하지 않는 길을 간다.